스포츠일기

EPL 감독 경질 순위표, 경기장 밖에서 만든 숫자

목살구이 2026. 9. 17. 14:00

2026-27시즌 9월 3주차, EPL 감독 경질 예상 순위 상위권

프리미어리그 감독 경질 순위표는 경기를 본 사람이 만든 숫자가 아니다. 이번 주 나온 2026-27시즌 판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캐릭 감독이 5위, 토트넘의 데제르비 감독이 3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보고 이 얘기를 꺼내야겠다 싶었다. 9월, 리그는 아직 채 한 달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누가 먼저 잘릴지 순서를 매겨놨다. 배당은 그 경기장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사회 회의실과 미디어 헤드라인의 온도를 점수로 바꾼 것에 가깝다. 마이크를 잡고 매주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 이 표는 늘 어딘가 헛짚는다.

 

 

5월 감독상 후보가 9월엔 경질 5위

캐릭 감독 얘기부터 해보자. 올해 1월 14일 후벵 아모림이 경질되고 캐릭이 임시 사령탑으로 올라왔다. 봄에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고, 5월 15일엔 과르디올라·아르테타와 함께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맨유를 살려냈다는 평가였다. 캐릭은 원래 맨유에서 뛰던 미드필더 출신이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선수 프로필에는 그가 현역 시절 이 무대를 누비던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새 시즌 들어 넉 달도 안 돼 다시 경질 순위 5위다. 감독상 후보와 경질 후보, 이 둘 사이에 팀의 경기력이 그렇게 크게 달라졌을까. 여름 이적시장에서 몇 명 바뀌고 8월 개막 라운드 결과 한두 개가 나빴다고 순위가 이렇게 요동친다면, 그건 캐릭의 축구가 변한 게 아니라 순위표를 매기는 쪽의 셈법이 얕다는 뜻이다.

이 소식을 넘기다 보면 댓글창 반응도 눈에 띈다. 어떤 팬은 "거봐, 그럴 줄 알았다"며 순위표를 근거로 든다. 그런데 정작 그 팬이 최근 5경기 풀타임을 다 챙겨봤는지는 알 수 없다. 순위표 한 줄로 시즌 전체를 재단하는 게, 가장 흔한 실수다.

 

 

매번 같은 두 팀 이름

이 순위표를 시즌마다 따라가 보면 낯익은 이름이 반복된다. 지난해 11월 판에서 토트넘은 3위, 맨유는 6위였다. 12월 판에서는 토트넘이 1위로 올라섰고, 올해 1월 판에서는 당시 감독이던 프랭크가 압도적 1위, 캐릭은 14위, 과르디올라는 17위였다. 그리고 2월 11일, 정말로 프랭크가 경질됐다. 8개월 무승이라는 기록과 함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순위표가 용하다 싶다. 그런데 뒤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랭크 후임으로 온 데제르비가 반년 만에 다시 3위, 감독상 후보였던 캐릭이 5위다. 순위표 상위권에 오르는 건 결국 사람이 아니라 자리다. 맨유와 토트넘이라는 두 클럽이 감독을 갈아치워도 계속 상위권에 머무는 거라면, 이건 그 감독 개인의 경기력 평가가 아니라 클럽이 짊어진 기대치와 조바심을 재는 온도계에 가깝다.

이 패턴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23년 9월 판에서는 포체티노가 8위에서 출발해 결국 시즌 끝에는 1위 자리까지 올라갔고, 2024년 9월 판에서는 포스테코글루가 10위, 텐하흐가 4위로 시작해 그해 최종 1위는 다이치였다. 해마다 이름은 바뀌어도 순위표 상위권을 채우는 클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9월이면 비슷한 팀들이 후보로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이 순위표의 정체를 말해준다.

 

 

표본은 아직 한 달이 안 됐다

9월 중순, 프리미어리그 공식 순위표를 열어보면 대부분 팀이 아직 5경기 안팎을 치렀을 뿐이다. 90분씩 다섯 번, 다 합쳐도 450분이다. 축구 한 시즌은 38라운드, 3천 분이 넘는 긴 여정이다. 그중 15분의 1도 안 되는 구간에서 벌써 경질 순번을 매기는 건, 마라톤 출발선에서 100미터 지점 순위로 완주 등수를 매기는 셈이다.

캐스터로 경기를 보면 이게 더 분명해진다. 초반 몇 경기의 스코어보다 중요한 건 그 팀이 공을 어떻게 돌리는지, 실점 장면이 매번 반복되는 패턴인지 그날그날의 우연인지다. 그건 배당 데이터 몇 줄로는 안 잡히고, 90분을 끝까지 지켜봐야 겨우 보인다. 순위표를 만드는 쪽이 그 시간을 매주 다 챙겨봤을 리 없다.

축구 팬이라면 다 아는 장면이다. 개막 2연패에 여론이 들끓다가, 3주 뒤 그 팀이 내리 이기면서 조용해지는 경우가 매 시즌 나온다. 그 사이 감독이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바뀐 건 표본이 쌓인 것뿐이다. 5경기 성적표로 시즌 전체를 예단하는 건, 팬도 배당업계도 똑같이 저지르는 실수다.

 

 

그래도 배당이 맞을 때가 있다

반론도 있다. 프랭크의 사례가 보여주듯 배당은 순전히 감으로 매기는 숫자가 아니다. 베팅업계는 클럽 내부 동향, 이적시장 소문, 이사회 분위기까지 촘촘히 모아 확률로 바꾼다. 1월에 프랭크를 1위로 올려놓고 한 달 뒤 실제로 맞혔다. 이 정도면 무시할 수 없는 예측력이다.

다만 그건 시즌이 절반 가까이 흐른 1월의 얘기였다. 그때는 20경기 넘는 표본이 이미 쌓여 있었다. 9월의 순위표와 1월의 순위표는 형식은 같아도 근거의 두께가 다르다. 표본이 얇을 때 나온 숫자를 표본이 두꺼울 때와 같은 무게로 읽는 게 지금 이 소동의 진짜 문제다.

 

 

10경기쯤 지나면 다시 보겠다

그래서 내 조건은 이렇다. 리그가 10경기쯤 지나고도 캐릭과 데제르비가 여전히 상위권에 남아 있다면, 그때는 이 순위표를 인정하겠다. 그쯤이면 실점 패턴도, 공격 전환 속도도, 로테이션 폭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지금은 아니다.

이번 주말 맨유와 토트넘이 각각 어떤 경기를 치르는지, 그 흐름부터 먼저 보고 싶다면 스포랭크 경기일정 및 분석실에서 다음 라운드 매치업을 미리 확인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순위표 숫자 하나보다 그 90분이 훨씬 많은 걸 말해준다.

 

 

숫자가 아니라 경기를 보라

9월의 감독 경질 순위표는 예언이 아니다. 이사회의 조바심과 미디어 헤드라인을 계산에 넣어 만든 확률표일 뿐이다. 캐릭이 5위, 데제르비가 3위라는 숫자에 흔들리기 전에, 이번 주말 그 팀들이 실제로 어떤 축구를 하는지부터 지켜보자. 경기장 안에서 답이 나온다.

이 순위표를 만든 쪽만 탓할 것도 아니다. 매년 9월이면 반복해서 이 표를 클릭하고 공유하는 것도 결국 우리다. 다음에 또 이런 순위표가 올라오면, 그 위에 적힌 이름보다 이번 주말 그 팀 경기의 킥오프 시간부터 먼저 확인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