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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코너다" — 2011 여자월드컵 결승 117분, 사와의 발끝

목살구이 2026. 9. 15. 00:43

2011 여자월드컵 결승 득점 타임라인 — 69분, 81분, 104분, 그리고 117분

117분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왼쪽 코너 플래그 옆. 미야마 아야가 공을 내려놓습니다. 손으로 잔디를 한 번 쓸고, 공을 돌려놓고, 다시 한 번 쓸어요. 4만8817명이 채운 관중석의 소리가 이 순간 얇아집니다. 여기서 들리는 건 스터드가 잔디를 긁는 소리, 그거 하나입니다.

전광판은 2-1. 앞선 쪽은 미국입니다. 연장 후반이고, 남은 시간은 3분 남짓. 일본 벤치에 앉은 선수들이 전부 일어나 있습니다. 골키퍼 가이하라 아유미까지 하프라인 근처로 걸어 나와 있어요. 이 코너킥이 마지막 세트피스라는 걸 경기장 안의 22명이 전부 알고 있습니다.

미야마가 오른손을 듭니다. 손가락 하나. 니어포스트, 짧게. 신호를 받은 일본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자리를 바꿉니다. 그 움직임의 맨 끝, 골대에서 가장 가까운 쪽으로 파고드는 등번호 10번이 보입니다. 사와 호마레입니다. 이 글은 그 한 번의 코너킥, 그 3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심은 독일의 비비아나 슈타인하우스입니다. 시계를 한 번 보고, 팔을 들어 올립니다. 킥 준비 완료.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심판의 손끝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 공 하나가 오늘의 마지막 공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25경기가 걸렸습니다

이 장면의 무게를 알려면 킥오프 직전으로 한 번만 돌아가야 합니다. 2011년 7월 17일, 이 결승이 열리기 전까지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25번 싸워 22번 지고 3번 비겼습니다.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25전 0승입니다. 대회 개막 전 세계랭킹도 미국이 1위, 일본이 4위였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경기였습니다.

게다가 그해 3월,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습니다. 대표팀은 그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로 건너왔습니다. 이 팀이 결승까지 올라올 거라고 대회 전에 말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팀이 여기 서 있습니다. 그것도 우승을 3분 앞둔 미국 앞에.

여기까지 오는 길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8강 상대가 개최국 독일이었어요. 홈 관중이 꽉 찬 경기장에서 일본은 90분을 0-0으로 버텼고, 연장 후반 108분에 교체로 들어간 마루야마 가리나가 한 골을 넣어 1-0으로 이겼습니다. 그 경기도 90분 안에는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한 방으로 끝냈어요. 이 팀은 그런 식으로 결승까지 왔습니다.

결승 이전 25차례 맞대결 — 미국 22승 3무, 일본 0승

경기 흐름 자체도 미국 쪽이었습니다. 69분, 미국의 알렉스 모건이 선제골을 넣습니다. 수비 뒷공간으로 한 번에 넘어온 공을 그대로 잡아 마무리했어요. 일본은 그때까지 슈팅다운 슈팅이 거의 없었습니다. 점유는 나쁘지 않은데, 마지막 30m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날 미국은 전반부터 일본 골문을 계속 두들겼습니다. 그런데 전반이 0-0으로 끝납니다. 축구에서 이런 전반은 대개 나중에 값을 치릅니다. 넣을 때 넣지 못한 팀이 뒤에서 흔들리는 건 아마추어 경기든 월드컵 결승이든 똑같아요. 미국은 그 값을 이날 밤에 전부 치르게 됩니다.

동점골은 81분에 나왔습니다. 골문 앞 혼전, 미국 수비가 걷어내려던 공이 애매하게 흘렀고 그 자리에 미야마가 있었습니다. 왼발로 가볍게 밀어 넣습니다. 2-1이 아니라 1-1. 일본은 이 골 하나로 연장까지 버틸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 골의 성격을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멋지게 만들어낸 장면이 아니었어요. 흘러나온 공을 가장 먼저 본 선수가 미야마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으려면 앞선 80분 동안 계속 그 근처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운처럼 보이는 골 뒤에는 보통 그런 시간이 붙어 있죠.

그런데 연장 전반 104분, 다시 미국입니다.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애비 왐바크가 머리로 꽂아 넣습니다. 왐바크 특유의, 사람 한 명을 등지고 올라가는 그 헤더요. 2-1. 이쯤에서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정상이었습니다. 연장 후반에 한 골을 따라잡는 팀은 흔치 않으니까요.

여기서부터 117분까지, 일본에게 주어진 시간은 13분이었습니다. 이 13분 동안 일본은 미국 진영으로 공을 계속 밀어 넣었지만 열린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 수비 라인은 내려앉았고, 박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열린 플레이로 뚫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입니다. 세트피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지고 있는 팀이 시간에 쫓기면 보통 공을 앞으로 길게 찹니다. 일단 넘기고 보자는 거죠. 그런데 그날 일본은 롱볼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평균 신장에서 밀리는 팀이 공중볼 싸움을 반복해봐야 이길 확률이 낮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대신 짧게 돌리면서 코너킥과 프리킥을 얻어내는 쪽으로 갔습니다. 남은 13분 동안 일본이 노린 건 사실상 세트피스 한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너킥이 왔습니다. 미야마의 왼발입니다. 공이 높이 뜨지 않아요. 낮고 빠르게, 니어포스트 쪽으로 감겨 들어옵니다. 이건 머리로 받아 넘기라는 공이 아닙니다. 방향만 살짝 바꾸라는 공입니다.

미국 수비가 반응합니다. 파포스트를 지키던 선수들이 몸을 돌리는 사이, 골대에서 가장 가까운 그 틈으로 사와가 들어옵니다. 뛰어들어가는 속도가 공의 속도와 거의 같습니다. 점프하지 않아요. 몸을 낮춘 채, 오른발을 뻗습니다.

박스 안에서는 그 직전에 이미 속임수가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일본의 키 큰 선수들이 파포스트 쪽으로 먼저 움직였고, 미국 수비의 시선이 거기로 쏠렸습니다. 사람이 몰린 쪽 반대편, 즉 골대와 가장 가까운 공간이 한 박자 비었습니다. 코너킥에서 비는 공간은 길어야 1초입니다. 그 1초를 쓰겠다고 미야마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던 겁니다.

발등이 아닙니다. 발끝입니다. 정확히는 발의 바깥쪽이에요. 세게 차지 않습니다. 코너킥이 가진 속도를 그대로 두고, 각도만 90도 가까이 꺾어버립니다. 공은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니어포스트 안쪽으로, 그물 윗부분을 때리고 들어갑니다. 2-2입니다.

관중석 반응이 한 박자 늦습니다. 골이 들어간 걸 본 사람보다, 옆 사람이 일어나는 걸 보고 따라 일어난 사람이 더 많았어요. 그만큼 빨랐고, 그만큼 조용한 골이었습니다.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가 함성보다 먼저 들린 골, 경기장에서 그렇게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이 한 번의 터치를 다시 보면 놀라운 건 힘이 아니라 타이밍입니다. 사와는 공이 오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공과 같이 도착했습니다. 0.2초만 빨랐어도 수비수가 몸으로 막았을 거고, 0.2초만 늦었어도 골키퍼가 먼저 잡았을 겁니다. 그 사이의 아주 좁은 틈으로 들어간 발끝이었습니다.

골이 들어간 뒤에 벌어진 일도 기억할 만합니다. 일본 선수들은 뛰어가서 껴안지 않았습니다. 사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달려간 거였어요. 아직 3분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앞서가는 팀처럼 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팀처럼 움직였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이 팀이 그날 어떤 상태였는지를 다 말해줍니다.

이 코너킥은 사와의 그 대회 다섯 번째 골이었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사와는 득점왕에게 주는 골든부트와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같은 대회에서 두 상을 함께 가져간 선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골 중에서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세게 때린 골이 아니라 힘을 완전히 뺀 이 발끝 하나입니다.

사와는 그때 서른셋이었고, 월드컵 본선만 다섯 번째였습니다. 열다섯 살에 대표팀에 뽑혀 여자축구가 지금 같은 주목을 전혀 못 받던 시절부터 뛰어온 선수예요. 그 긴 시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장면이 있다면, 아마 이 코너킥일 겁니다. 대단한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화면에 오래 남지도 않지만, 거기 있어야 할 시간에 거기 있었던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골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승부차기, 미국의 1번부터 3번까지

2-2로 120분이 끝나고 승부차기입니다. 미국이 먼저 찹니다. 1번 키커 섀넌 복스, 가이하라가 막아냅니다. 2번 칼리 로이드, 크로스바를 훌쩍 넘깁니다. 3번 토비 히스, 이것도 가이하라입니다. 세 명이 연달아 실패했습니다.

승부차기가 시작되기 전 두 팀의 표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서로 어깨를 붙이고 서 있었고, 일본 선수들은 웃고 있었어요. 120분 동안 두 번이나 뒤졌다가 두 번 다 따라잡은 팀이 가질 수 있는 얼굴입니다. 잃을 게 없는 쪽과, 다 잡았다가 놓친 쪽의 차이가 페널티 마크 앞에서 그대로 나왔습니다.

일본 쪽도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나가사토 유키의 킥은 미국 골키퍼 호프 솔로가 막았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들어갔어요. 미국의 4번 키커 왐바크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승부차기 일본 3-1 미국 — 미국은 1~3번 키커가 연속으로 실패했다

마지막 키커는 구마가이 사키였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 한 방이 들어가면 끝나는 상황에서, 스무 살 수비수가 걸어 나와 공을 놓고, 그대로 꽂아 넣었습니다. 일본 3-1 미국. 경기 종료입니다.

구마가이가 걸어 나오는 동안 경기장이 다시 한 번 조용해졌습니다. 117분에 한 번,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 그날 프랑크푸르트는 두 번 조용해졌고, 두 번 다 일본 쪽에서 소리가 먼저 터졌습니다.

이날 최우수선수로 뽑힌 건 골을 넣은 사와가 아니라 골키퍼 가이하라였습니다. 승부차기에서 두 번을 막았으니 당연한 선택이었죠. 하지만 그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게 만든 건 117분의 그 발끝이었습니다. 그 코너킥이 없었다면 가이하라에게는 막을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성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남자부와 여자부를 통틀어서요. 25전 0승이던 상대를, 하필 결승에서, 하필 두 번이나 뒤진 상태에서 따라잡고 넘어섰습니다.

기록만 보면 일본은 이날 슈팅 수에서도, 유효 슈팅에서도 미국에 밀렸습니다. 통계로는 진 경기예요. 그런데 스코어보드에는 일본이 올라가 있습니다. 축구에서 통계와 결과가 이렇게까지 어긋나는 경기는 한 시즌에 몇 번 안 나옵니다. 그 어긋남을 만든 게 결국 세트피스 한 장이었다는 게 이 경기의 핵심입니다.

이 경기가 지금까지 인용되는 이유는 이변이라서가 아닙니다. 이변은 자주 나옵니다. 이 경기가 남은 건 마지막 세트피스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남은 시간이 3분일 때, 열린 플레이로는 답이 없을 때, 팀이 준비해 둔 코너킥 한 장이 어떤 값을 하는지를요.

미야마는 높이 띄우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그날 경기 내내 공중볼 경합에서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높이를 버리고 속도와 각도를 골랐습니다. 사와는 그 선택에 맞춰 점프 대신 슬라이딩에 가까운 자세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건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나오는 그림이 아닙니다.

요즘도 세트피스 코치를 따로 두는 팀이 늘고 있죠. 니어포스트로 낮게 감아 차는 코너킥, 골문 앞을 비워두고 뒤에서 달려드는 러너, 키 큰 선수를 미끼로 쓰는 배치. 지금은 전술 보드에서 흔히 보이는 그림들입니다. 그 그림들이 실제 결승전 마지막 3분에 통한다는 걸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날 117분입니다.

여자축구 쪽에서 이 장면이 특히 자주 인용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신체 조건에서 앞서는 팀을 상대로, 그 조건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고 비켜 가는 방법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높이로 이길 수 없으면 높이를 아예 쓰지 않는다. 힘으로 이길 수 없으면 힘을 쓰지 않는다. 말은 쉬운데, 결승전 연장 후반에 그 원칙을 지키는 팀은 드뭅니다.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미야마가 잔디를 쓸고, 손가락 하나를 듭니다. 관중석 소리가 얇아집니다. 공이 낮게 감겨 들어오고, 10번이 니어포스트로 뛰어듭니다. 발끝이 공에 닿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습니다. 세게 차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소리 없는 터치 하나가 25경기치 기록을 지우고, 한 나라의 축구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축구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대체로 가장 힘을 뺀 장면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117분이 딱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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