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천, 강원도 산골 마을 이름을 단 여자축구단이 있다. 창단 14년 만인 2025년, 이 팀은 WK리그와 전국체전, 전국여자축구선수권까지 싹쓸이하며 여자 실업축구 사상 첫 트레블을 완성했다. K리그나 프로야구처럼 매경기 만원 관중이 몰리는 종목은 아니다. 관중 몇백 명이 전부인 작은 구장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그 14년을 시간 순서로 짚어본다.
2011년 — 창단, 그리고 1승
구단은 2011년 국민체육진흥공단(KSPO) 산하 실업팀 '전북 KSPO'로 출발했다. 당시 국내 여자축구는 실업팀 대부분이 지자체나 공기업 후원으로 겨우 유지되던 시기였다. 첫 시즌 성적표는 21경기 1승, 리그 7위였다.
관중석은 늘 텅 비어 있었고, 지방 실업팀이 흔히 겪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창단 첫해 성적만 보면 14년 뒤 트레블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2015년 — 화천으로, 이름을 바꾸다
구단은 강원도 화천군으로 연고를 옮기며 '화천 KSPO'라는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유치와 지원이 배경이었다.
산골 마을의 작은 종합운동장이 홈구장이 됐고, 좁은 예산 안에서도 선수단을 꾸준히 정비할 수 있는 기반이 이때 마련됐다. 연고 이전은 이후 10년을 지탱한 전환점이었다.
2017년 — 처음 밟은 결승 무대
강재순 감독이 이끈 팀은 시즌 막판 6위에서 3위로 뛰어오르며 구단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당시 리그 최강으로 꼽히던 인천현대제철이었고, 결과는 준우승이었다.
화천 벤치는 그날 처음으로 '우리도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시즌 초반까지 하위권에 머물던 팀의 반등이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컸고, 이때의 경험은 이후 결승 무대에서 위축되지 않는 팀 색깔로 이어졌다.
2018년 —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를 데려오다
국가대표 공격수 전가을이 합류하며 공격 한 축이 완성됐다. 대표팀에서 이미 득점력을 인정받은 선수가 가세하자 팀의 골 결정력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방 실업팀이 국가대표급 선수를 데려오는 일은 흔치 않았던 만큼, 화천이 여자축구계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혔다. 이 시기 영입은 이후 몇 년간 화천의 공격 축구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2019년 — 첫 트로피, 그러나 리그는 4위
전국체전에서 보은상무를 2대0으로 꺾고 구단 사상 첫 우승을 신고했다. 실업축구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은 대표팀 못지않게 자존심을 건 무대다.
다만 정규리그 성적은 4위에 머물렀다. 트로피는 늘었지만 리그 우승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리그와 체전 성적이 따로 노는 이런 흐름은 이후로도 몇 시즌 더 이어졌다.
2021년 — 조용한 재정비의 시간
코로나19로 리그 일정이 파행을 겪던 2020~2021년, 화천 KSPO는 눈에 띄는 성적은 없었지만 유망주 선수단을 착실히 넓혔다.
훗날 2025년 트레블의 주역이 되는 선수들 상당수가 이 시기에 팀에 자리를 잡았다. 화려하지 않았던 몇 년이 오히려 다음 도약의 준비 기간이 됐다.
2024년 — 정규리그 1위, 그런데 준우승
화천 KSPO는 마침내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후 처음으로 리그 최강팀임을 증명했다. 그대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지만, 상대는 14년 만의 우승을 노리던 수원FC위민이었다.
시즌 내내 1위를 지켰던 화천은 정작 마지막 고비에서 발이 꼬였고, 트로피 하나를 눈앞에서 놓쳤다. 정규시즌 1위가 곧 최종 우승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한 시즌이었다.
2025년 — 4개의 트로피, 여자축구 최초 트레블
2025년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서울시청. 원정으로 치른 1차전에서 화천은 3대2로 승리했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4대3으로 다시 이기며 합계 7대5로 우승을 확정했다. 2차전 최유정이 9분과 20분 두 골을 넣고 24분 위재은의 쐐기골까지 어시스트하며 2골 1도움으로 결승전 MVP에 올랐다. 전년도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릎 꿇었던 바로 그 무대에서, 이번에는 웃었다.
여기에 정규시즌 우승, 전국체전 금메달, 전국여자축구선수권 우승까지 더해 한 시즌에 4개 대회를 모두 들어올렸다. 여자 실업축구 역사상 처음 나온 트레블이었다. 득점왕은 문미라, 도움왕은 최유정이 차지하며 개인 타이틀까지 팀 우승과 함께 따라왔다.

2026년 — 디펜딩 챔피언의 새 시즌
2026시즌 WK리그는 4월 4일 킥오프했다. 화천 KSPO를 포함해 8개 구단이 팀당 28경기씩, 총 112경기를 치른다. 주말·공휴일 경기 비중이 리그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늘어난 것도 이번 시즌의 특징으로, 한국여자축구연맹이 관중석을 채우기 위해 꺼낸 카드다. 정규시즌은 10월 31일까지 이어지고, 이후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으로 우승팀을 가린다.
화천 KSPO는 이제 쫓기는 입장에서 두 번째 트레블에 도전한다. 지난해와 달리 상대 팀들도 화천의 전력을 철저히 분석하고 나올 시즌이라, 방어전이 오히려 더 까다로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세한 순위와 경기 일정은 여자축구 실시간 무료중계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분수령은 챔피언결정전이다
10월 말 정규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플레이오프가 이어진다. 14년을 돌아온 팀이 2년 연속 트레블까지 갈 수 있을지, 이번 시즌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지난 시즌 준우승에 그쳤던 서울시청과 14년 만의 우승을 노렸던 수원FC위민 모두 이번에는 설욕을 벼르고 있어, 화천의 왕좌 방어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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